어느 평일 오후.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출입국 심사대 앞에 서 있다. 외국인 입국 심사관이 영어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묻는다.
“Hello, can I see your passport?”
우물쭈물 하는 아이에게 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말한다.
“여권 보여달라는 거야. 여권 보여줘야지.”
여느 출입국 관리소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실제 출입국 관리소에서 일어난 상황이 아닌, 경기도 파주에 있는 영어마을 내 출입국 관리소의 풍경이다.
경기영어마을 파주캠프는 47개의 교육동 및 숙소시설, 시청, 박물관, 도서관, 공연장 등 각종 체험시설을 갖춘 영어교육 테마공간이다. 파주캠프는 실제 영어권 국가의 도시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환경을 조성해 놓았다.
출입구를 지나면 이곳이 한국인지 외국인지 혼동될 정도로 비슷한 영어권 국가의 건물이 있는 메인 스트리트와 마주친다. 모든 상점의 간판은 영어이고 커피숍, 서점, 박물관, 시청, 경찰서, 우체국 등 다양한 상점과 공공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 지난 6일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영어마을에서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와 영어회화를
익히고 있다. 한향주 기자 jupiterian@ytongsin.com
“이해하기 어려워도 재미있어요”
파주캠프에서는 한국어가 외국어로 통한다. 파주캠프에 입소하는 순간부터 영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점 계산대에서는 외국인이 계산을 하고 있다.
지나는 행인들 역시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드라마, 음악, 미술, 과학 등 모든 수업은 100% 영어로 진행되고, 은행이나 각종 공공기관에는 외국인 교사들이 배치돼 있어 영어만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기자가 캠프를 찾은 오후 1시경. 여름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가족단위 관람객과 초등학생 단체 관람객들이 제법 많았다. 2시간여를 돌아다니는 동안 종종 스쳐 지나가던 외국인들이 먼저 “Hi~!”라고 인사를 건내 오기도 했다.
일부 관람객들이 움찔하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HI~!’라고 대답한다. 오히려 아이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Where are you from?”, “What is your name?” 등 간단한 영어를 용기있게 물어보기도 했다. 지나던 외국인들도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외국인 특유의 과장된 액션(action)도 보여줬다.
아이들은 외국인의 대답 하나, 몸짓 하나에 신기하듯 처다보다가도 이내 꺄르르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구에서 올라온 초등학교 6학년 최보라 양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최양은 “영어만 써야 하다보니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자신의 느낌을 전했다.
집만 가까우면 자주 놀러 오고 싶다는 최양은 다음에는 체험 방문이 아닌 방학프로그램에도 참석해 보고 싶다고 했다. 다만 집이 멀어서 걱정이라는 말과 함께.
강원 영동지역 초등학교에서 선발돼 왔다는 성창훈(초 6학년) 군은 몇시간의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물론 못알아듣는 친구들도 있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외국인과 대화하는게 어색하지 않았냐고 묻자 “우리 학교에도 원어민이 있어 별로 이상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확실히 어른들 보다 아이들이 외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 보였다.
기자가 만난 관람객 대부분은 “재미있었다”며 캠프에 대해 만족해 했다. 어린 학생들일수록 만족도는 더 높았다.
일부 체험자 “단어공부 뿐” 불만
하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공공기관 체험 등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회사일로 바쁘게 지내다 모처럼 기회를 맞이해 캠프에 왔다는 이아무개(40)씨는 “오직 영어만 사용해야 한다고 해서 두 아이들 열심히 영어회화를 공부하려고 찾아왔는데, 그 꿈은 산산 조각이 났다”며 “두 아이들에게 실망감만 남겨줬다”고 대답했다.
그가 실망한 부분은 체험 코너에서의 대화였다. 이씨는 “체험 코너가 무슨 단어 공부하는 곳이냐”며 “경찰서 체험을 하는데 유치원에서 영어 공부하듯 이름 물어보고, 색깔 공부나 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사실 기자 역시 몇몇 코너를 참관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수업 앞부분에서는 대부분이 단순히 단어 알아맞히기 수준의 수업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영어마을에 오면 영어를 몰라 쩔쩔매서 당황하고 진땀 꽤나 흘릴 것으로 생각돼서 두 아이들에게 망신 당하면 어쩌나 하고 왔다”며 “하루 종일 돌아다니며 건물 모양 보고 사진 몇장 찍고 그게 다였다”고 말했다.
4주 참가비 160만원 받아도 적자
파주캠프의 경우 해마다 적자 운영을 거듭해 왔다. 지난해는 49억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캠프측은 “교육기관에 ‘적자’, ‘재정자립도’라는 개념이 도입된다는 것은 잘못된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이 아니라 교육사업을 하는 ‘공공기관’이라는 것이다. 파주캠프가 적자운영으로 여론의 비판에 노출되면서도 교육비를 올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무료교육이 실시되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에 대한 비용도 지원받는 예산 없이 캠프측에서 부담하고 있다. 지원 대상은 입소정원의 20%이다.
교육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이유로 캠프측 주장에 타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성을 이유로 적자 운영비를 국가 예산으로 지원해 주면 그 만큼의 실질적 교육 효과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재반박 한다. 스스로 ‘교육기관’이라고 지칭한 만큼 이에 대해서는 캠프측도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파주캠프의 경우 방학집중프로그램(4주) 참가 비용이 1백60만원이다. 해외 어학연수를 대체하고 영어 영역별 심화학습을 병행해 실질적인 영어능력 향상에 기여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고는 하나 4주에 1백60만원이라는 금액은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캠프측 설명처럼 공공기관으로서 ‘교육’의 목적을 강조 한다면 1백60만원이나 되는 참가비에 맞는 훌륭한 교사와 수준 높은 프로그램으로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통신 장정욱 기자 jjang@ytong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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