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올해 6월로 하늘나라로 간지 5년째네. 친손녀가 있긴 한데 멀리 있고. 가까이 사는 딸 둘 중에 큰 딸이 낳은 손자 창우 보는 낙에 살았지. 저걸두고 어떻게 한국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어. 한국에 한 달 있다가 사할린에 세달 있고, 그렇게 할 심산이다.”
▲ 지난달 30일 러시아 사할린 우글래고르스크 한인회관에 모인 재외동포. 김황식 우글래고르크스 한인회장과 서을순(85세), 김종순(80세), 안복순(75세), 김인순(75세), (왼쪽부터)씨.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지난 30일과 31일 러시아 사할린 우글래고르스크. 아파트에서 큰 딸과 손자와 함께 살 고 있는 이춘강 할머니(70세, 39년생)는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신청했다. 하지만 할머니 나이 62에 본 손자가 눈에 밟혀 러시아를 떠나도 떠나는 게 아니다.
이 할머니는 딸 둘과 함께 귀국하는 방법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고개를 저은 건 딸이 먼저다. 이 할머니는 “딸이 한국말을 모르니까 ‘어떻게 한국가서 살겠느냐’고 하더라”며 “결국은 내가 왔다갔다 해야지”라며 말 끝을 흐렸다.
이 할머니는 “한 달은 한국에 있다가 사할린에 세 달 있다가 그렇게 할 심산”이라며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아이들 옆에서 죽는 게 낫지 아이들 힘든데 한국까지 왔다갔다 하게 할 순 없지 않느냐”고 자식을 두둔한다.
“먼저 영주귀국 한 사람도 이맘 때쯤 많이 들어 온다. 여름에 더워서 못살겠더고 하더라고. 한창 더운 7~8월쯤 러시아 왔다가 날씨 선선해 지면 10월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될 것 같다.”
이 할머니는 “가기 싫었는데 유즈노사할린스크시에 사는 친구가 가자고 졸라서 가는 것”이라고 이유를 들었다. 현재 영주귀국 사업이 2인1조를 기준으로 지원되다보니 부부가 아닌 이상은 이렇게 ‘짝’을 찾아야 한다.
이 할머니처럼 올해 영주귀국을 신청한 사람은 우글래고르스크시에만 30명, 삭조르스크시에도 10여명 남짓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장밋빛 미래’를 발견하는 이들은 몇이나 될까. 또 남아 있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장밋빛 미래’는 무엇일까.
▲ 지난달 31일 러시아 삭조르스크 시에 사는 김기연 씨(호적상 이기연, 32년생)가 구술작업을 위해 집을 찾은 재외동포NGO대회 참가자들에게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김 씨는 영주귀국을 선택해 한국으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강제징용 된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와 함께 9살에 사할린으로 왔다는 안복순 할머니(75세). 할머니는 “영주귀국 가기 싫고 모국방문도 갈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꼭 한국에 돌아가서 죽겠다”고 했던 남편 때문에라도 더더욱 가기 싫다는 것이다.
“우리 주인(남편)이 한국에 꼭 가겠다고, 여기선 절대로 자리 안 잡겠다고 했었다. 영주귀국이 99년도 정월에 가능해졌다. 그러면 뭐하나 우리 주인은 9월에 돌아갔는데. 우리 주인이 한 번 갔다오고 싶다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려서, 이젠 가기 싫다.”
‘너무 늦었다’는 원망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안 할머니는 “이제는 맥도 없고, 병도 얻어서 영주귀국이나 모국방문을 못하는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자식들과 ‘생이별’ 해야하는 현실도 쉽게 영주귀국 신청서를 작성하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다. 사할린에서 태어났다는 김인순 할머니(75세)의 남편도 브이코프 탄광에 모집으로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경우.
김 할머니는 “우리 주인은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3년 전 돌아갔다”며 “자기도 부모형제 놔두고 와서 사할린에서 평생을 보내며 불효를 했는데 어떻게 또다시 가족을 버리고 가겠느냐”고 귀국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이미 ‘러시아식’으로 길들여진 입맛 도 선뜻 한국행을 선택하기에는 장애로 작용한다. 김홍식 할아버지(64세)는 한국에서 사할린으로, 다시 일본으로 이중징용 됐다가 한국으로 귀국한 아버지와 두 형님을 만나러 1990년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형님과 일가 친척을 만나 한달쯤 한국에 있었다는 김 할아버지는 러시아 식단에 길들여진 입맛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고 살작 말한다. 그는 “러시아에서 먹던 돼지기름을 찾으니 형수님과 형, 동생 다들 ‘왜 그런 걸 먹느냐’는 반응이었다”며 “그 후에 세달 더 있었지만 음식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고 전했다.
▲ 지난달 30일 러시아 삭조르스크 시에 위치한 제지공장에 대해 재외동포 김홍식 씨(하얀 점퍼 입은 이)가 설명하고 있다. 일제시대 건설한 이 제지공장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국가 지원이 중단되자 쇠퇴하다가 결국 2003년 공장 운영을 중단했다. 전망탑 같은 높은 건물과 3개의 큰 굴뚝 같은 높은 기둥이 있는 제지공장은 부속건물이 총 15개에 이르는 대규모다.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사할린에 남기를 택한 사람들도 허망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지난달 31일 삭조르스크에세 만난 김기연 할머니(76세)는 곧 영주귀국 할 예정이다. 김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던 이웃사촌 김영자 할머니(75세)는 “동연배로 친하게 지냈는데 한국가면 혼자 심심해질 것 같다”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물론 영주귀국을 싫어하는 부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해 영주귀국을 신청한 김기연 할머니(76세)는 “아이들도 다 키워놨으니까 고향구경도 하고, 편안한 곳에 가서 얻어먹기도 하고 구경시켜 주기도 하니 좋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김원진 삭조르스크 한인회 부회장(67세)도 영주귀국을 신청했다. 곧 김 부회장은 입국 날짜가 확정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만 하면 될 날을 기다리며 “기대된다”고 해맑게 웃어보인다. 하지만 떠나는 마음이 편한 것 만은 아니다.
김 부회장은 “여러가지 이유로 사할린에 남아있기를 택한 사람이 많다”며 “이들에 대한 지원도 잊지 말아야한다”고 당부했다. 사할린에 남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 부회장은 “역시 생활비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외동포NGO 대회에 참가했던 한 참가자는 “사할린 한인 중에서도 부자와 서민층 구별이 되더라”며 “러시아에서 살기 편한 부자들은 영주귀국 사업을 신청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소감을 밝혔다.
러시아 사할린에서는 영주귀국 사업이 가난한 가족이 ‘입’하나 덜기 위해 사용하는 ‘현대판 고려장’ 같은 최후의 수단이 되지 않으라는 법도 없다. 다만 다른 점은 ‘현대판 고려장’은 부모가 자진해 ‘고려장’을 택한다는 차이일 뿐이다. 모두가 웃는 재외동포 정책은 없는 것일까.
사할린= 글 / 사진 김유리 기자 grass100@ytogn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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