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군, 2001년 2억 공사완료 해놓고,
2006년 특별교부금 5억 민속마을에 “자유롭게 사용”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에는 명성황후 생가 및 기념관이 있다. 여주에서 태어나 왕비로서의 삶을 살다 1885년 을미사변 당시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당한 명성황후를 기념하기 위한 곳이다.

1995년 생가 복원을 시작으로 그동안 1백70억원 가까운 예산을 들여 건물을 건설하고 기념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한해 평균 25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는다는 이곳은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 건설된 기념물 가운데 하나가 예산 문제로 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총 2억원의 예산으로 만든 ‘명성황후 동상’이 주인공이다. 동상은 최초 명성황후 기념관 내 설치돼 있었으나 홍보 등의 이유로 현재는 점봉리 국도 37호선 주변으로 옮겨진 상태다.

   
 
  ▲ 경기도 여주 나들목 인근 사거리에 세워놓은 명성황후상.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문제는 예산을 편법 운용했다는 의혹이다. 지난 2001년 동상이 지어질 당시 예산은 경기도가 1억원을 지원하고 여주군이 1억원의 예산을 보태 완공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6년 여주군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 동상 설립을 이유로 5억원의 특별교부세를 지원받았다. 이미 완료된 사업에 대해 예산을 지원받은 것이다.

이 특별교부세 5억원의 경우 결국 현재 건설 중인 민속마을 설립에 쓰인 것으로 조사됐다. 명성황후 유적관리사무소 담당자는 “지난 4월에 부임해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면서도 “특별교부세는 중앙정부에서 지원받아 군에서 자유롭게 쓰는 돈”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 특별교부세가 사용 용도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긴 하다. 행자부의 경우 해마다 광역 지자체별 배정 현황을 내 놓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명성황후 동상처럼 잡음이 발생하는 사업이 많은 것이다.

행자부는 현재 2년에 한 번씩 특별교부세 집행실태를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광역단체별 감사인데다가 현장감사 대신 대부분 서류 검토에 그쳐 감사 자체의 부실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의도통신 장정욱 기자 jjang@ytongsin.com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미정 여의도통신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빈형
    2008/07/20 19:5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위에 1985년 을미사변으로....오타인지 뭔지 틀렸어요 얼릉 고치세요...
    • 2008/07/20 19:57
      댓글 주소 수정/삭제
      오타 수정했습니다. 글을 옮기는 도중 오타가 발생했습니다. 지적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여의도통신 편집장>
  2. 흠....
    2008/07/20 20: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솔직히 명성황후는 그다지 존경할 인물이 아닌데말이죠....
    • 촛불
      2008/07/20 21: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맞는 말씀입니다.
      누가 명성황후를 띄우기 시작했지요?
    • 마이
      2008/07/20 21:44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공감. 명성황후를 기릴 만큼 무슨 업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이름이 오르내리면 무조건 훌륭한 인물인줄 아는 무개념들..무식이 죄입니다.
  3. baeke
    2008/07/20 20: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거 좀 더 많이 알려져야 할 문제 같은데요..
  4. 허걱
    2008/07/20 20: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메인에 있던거 같은데, 금방 사라졌네요..
    내가 잘못 봤나??
  5. 차라리 민비가 어떨지...
    2008/07/20 20:2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얼마나 많은 부정 부패를 저질렀나? 일본 사무라이에게 시해되었다는 하나만으로 존경받고 명성황후라 불리지 못하고 민비라 불려서 애국심을 조장케 해서 대접받는것일뿐 그 죄악에 대하여서는 단 한번도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욱 그렇다. 하기시 독립군을 고문했던 악랄한 일제 순사들이 대한민국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에 그다지 문제될 일도 아니지만...
  6. 문영
    2008/07/20 20: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조선말 왕족들과 외척세력들을 왜 존경해야하는지?? 저 무리들과 일본 제국주의 무리들과 다른점이 무언가? 민중의 피를 짜내고 짜낸 착취와 수탈의 지배계급이라는점에서 똑같다.
  7. 음,,,
    2008/07/20 20:47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역사책이 잘못된건가요?? 명성황후는 별로 존경할 인물이 아니던걸요.
    '내가 조선의 국모다'이러면서 칼 맞는거 이런거 다 드라마일뿐...
    그냥 권세 유지하겠다고 발버둥치던 외척일뿐이라고 생각되는데; 운없어서 평민으로 태어난 사람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해서 일제에 수탈당하고 살아도 죽은것처럼 살았을텐데 말입니다...그런데 기념관도 있고 동상까지 세운다니 원...전두환 기념관과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야겠네요...
  8. 요즘
    2008/07/20 20:4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요즘 개나 소나 다 동상을 세우네요....ㅡ.ㅡ;;

    존경할 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적이 있는것도 아니고..


    동학 혁명당시 청나라 군대를 끌여서 백성을 죽이는데 가장 앞장은 선

    사람이 명성황후죠.. 다 죽여라 !!
  9. ㅇㅇ
    2008/07/20 20: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시해당한걸 기념하려고 동상을 세우나봅니다.
    그냥 돈 타내려고 쇼하는것이 분명함..
  10. 이건 정말 ㅡㅡ
    2008/07/20 21:4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뭐 잘했다고 동상까지 세우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우리나라는 명성왕후를 뭐 대단한 사람처럼 받드는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적에는 명성왕후가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인물인줄 알았다가
    역사 배우면서 좀 충격받았드랬죠...ㅡㅡ...
    도대체 동상은 왜 세우는 거죠ㅡㅡ 시해당한게 업적인가ㅡㅡ
  11. gg
    2008/07/20 22: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국민 세금은 공무원들 해 쳐먹으라고 있는 돈인가? 저딴 거에 5억? 5억이 누구집 애 이름인가? 이런 식이니 누가 세금 내고 싶겠나? 5천만원도 많다.
  12. gg
    2008/07/20 22: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 정도로 전신상을 만드는 것은 국가적으로 정말 큰 기여를 했거나 존경 받는 인물에 국한해야 한다. 개나 소나 동상 만드는 이유가 세금 해쳐먹을려는 수작...
  13. 방랑자
    2008/07/20 22:1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 여자 존경받을만한 인물인가요? 동학농민운동이 왜 전라도에서 일어났는지 아는가? 당시 농민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개간사업이 진행되었죠. 개간된 농토는 자기들에게 나누어주는 줄 알았는데, 한떼기도 아니주니 농민들은 열좀 받았겠죠. 하는 수 없이 소작을 짓는데 수확량의 80%를 소작료로 강탈해갔죠. 이것은 지주들 보다 더 악날한 착취였조. 오늘날 사채업자나 조폭보다 더 악날하다고 해야겠죠. 시아버지 대원군에게 쫒겨서 장호원으로 도망칠때 우물가에서 흉보던 한 마을 아낙네들은 어찌했나는 설도 있고 ... 나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으로는 오함마로 때려 부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합니다. 앞으로는 국민 세금으로 개새끼나 돼지새끼까지 동상으로 만들지 안았으면 한다.
  14. 무식한 사람들아
    2008/07/20 22: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위에 댓글 달린것들 보니 참 기가 막히는구나.
    학교때 배운 얄팍한 지식으로 명성황후를 욕보이는구나.
    명성황후를 욕하는 사람들 다 뉴라이트적 관점에서 역사를 배웠나?
    과연 당신들이 진실을 알고 끄적대는 것인가?
    대답에 자신이 없다면 제대로 공부하라.
    일제의 더러운 녹물이 스며든 역사가 아니라
    진실된 조선 말기의 역사를..
    • 뤼팽
      2008/07/20 22: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럼 그녀의 업적이 몬가요? 외세를 등에 업은 왕권강화?

      그녀의 존재의의는 단 한가지 아닌가요?

      황후가 살해당했어도 아무런 대항도 못했던 약소국의 슬픔.
    • 요즘
      2008/07/20 22: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한번 묻고 싶네요..

      명성황후의 업적이 뭔가요?


      많은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3개만 제대로 말해주세요.

      김구선생님보다 윤봉길의사님보다 훌륭하신분인가요?


      오직 이씨왕조 며느리로 들어갔다는거 가장 큰 업적아닌가요?
    • ㅇㅇ
      2008/07/20 23:18
      댓글 주소 수정/삭제
      살다가 뉴라이트 소리를 다듣네요 ㅋㅋ
      위에분 말대로 김구, 윤봉길, 나석주, 이봉창 뭐 이런위인들 다 전신상 만들고 명성황후같은 사람 심심해서 만드는겁니까??
      명성황후까면 일제 쪽바리입니까? 웃기네요 ㅋㅋ
    • 문영
      2008/07/21 00:4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 유식한 니가 말해봐.. 민씨를 존경해야할 이유를 하나라도 대보라고..
      뉴라이트 또라이 새끼들이야 대한민국 수립이후의 왜곡된 역사가 나은 변종 개또라이 잡넘들이고..
      민씨가.. 안중근의사나 백범선생과 같이 민족의 선각자라도 되냐? 외세에 의존해 혈족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민중을 수탈한 권력의 화신아니냐?
    • 후후
      2008/07/21 06:5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너나 역사책 똑바로 봐라.

      민비 연극이나 소설 따위 보고 실제 역사라고 생각하지 말고..
    • 에드가 앨런포우
      2008/07/21 09: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국사공부 다시해보세요 명성황후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인지. 임오군란,외척세력 끌어들이기. 다ㅣ 명성황후가 저지른 일입니다.
  15. 뉴라이또
    2008/07/20 22:25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일본은 국익을 위한 일인데도 정부가 나서지 못할 경우에는 야쿠자를 시킨다는..내부의 적이 정말 무서운거다.
    • 후후
      2008/07/21 06: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뭘 우리도 있자나 정치 깡패라고 이정재 랑 장군의 아들이라고 구라치는 김두환..

      군사정권 때 까지 면면히 이어오다가 한 10년 멸종 된 듯 보였지만..

      수전노 같은 더러운 국민성이 쥐를 당선시키는 바람에 다시 부활 했지..
  16. 참고들 하세요
    2008/07/20 22:4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정비석作 '소설 명성황후'는 폐기처분해야"
    국사학자 이태진 '한국사 시민강좌'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국민의 바른 역사의식 확립을 위해 이 소설(정비석作 '소설 명성황후)은 독서계로부터 폐기 처분 선고를 받는 것이 옳다"
    학술원 회원이자 서울대 인문대학장으로 재직 중인 국사학자 이태진 교수가 최근 발간된 반년간 학술지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 펴냄)' 제40호에서 소설가 정비석(1991년 작고)씨의 작품 '소설 명성황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태진 교수는 '역사 소설 속의 명성황후 이미지'라는 글을 통해 1980년 출간된 '소설 명성황후(출간당시 제목 '민비')'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기구치 겐조(菊池謙讓)가 자신의 소설 '대원군전'에서 묘사한 명성황후의 부정적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구치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으며 1910년 명성황후 시해의 책임을 흥선대원군에게 떠넘길 목적으로 '대원군전'을 출간한 인물이다.

    그는 서원철폐와 세도정치 종식 등의 업적을 세운 대원군을 '건설적 영웅'으로,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대원군의 업적을 무너뜨린 명성황후를 '파괴적 영웅'으로 내세워 두 사람 간 대립구도를 왜곡ㆍ강조했다.



    둘 사이에 대립구도를 설명하기 위해 기구치는 수많은 허구를 끼워넣었다. 그는 대원군이 명성황후에게 아이가 생기기도 전에 궁인 이씨 소생의 왕자 이선을 세자로 책봉하려하자 황후가 적의를 품게됐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대원군이 왕자 선을 세자로 삼으려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전하는 바가 없다. 더구나 궁중의 어른인 조대비가 살아있는 가운데 대원군이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태진 교수는 "조선왕실의 후계자 선정 전통으로 볼 때 왕비가 20세도 되지 않았는데 궁인 소생을 원자로 책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완화군을 둘러싼 왕비와 대원군의 갈등관계는 기구치의 완전한 픽션"이라고 단정한다.



    기구치는 또 모든 것을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대결구도로 몰고가기 위해 1873년 대원군의 실정을 논핵한 최익현, 홍재학 등을 왕비당으로 규정하고 왕비의 지시에 따라 탄핵상소를 올린 것처럼 서술했다.



    그러나 최익현은 왕비의 지시와는 별도로 이미 1868년 대원군이 벌인 토목공사를 중단해 달라는 상소를 올렸으며 홍재학이 탄핵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구치가 왜곡ㆍ강조한 명성황후와 대원군의 원한관계,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고종의 모습은 오랫동안 고종시대사의 정설처럼 자리잡았다.



    이 교수는 "이런 인식이 유포되는 과정에는 소설이 큰 역할을 했다"며 "기구치의 역사상을 충실하게 활용한 소설이 정비석의 '소설 명성황후'"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정비석의 "소설 명성황후'는 기구치의 대원군전을 텍스트로 삼았기 때문에 대원군과 '민비'의 대립관계를 기본구도로 삼았다.



    그런데 단순활용에 그치지 않고 소설 주인공에게 능동성을 부여한 결과 '민비'는 포악한 여성이 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정비석은 명성황후를 태어날 때부터 억세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자 태생적으로 시아버지에게 질 수 없는 인간형으로 그렸다는 것.



    정비석은 또 상궁 장씨의 하문을 도려내고 복술쟁이 이유인을 비롯해 이경하의 서자 이범진, 좌영사 이조연 등과 불륜관계를 맺는 등 잔인하고 음탕한 짓을 서슴지 않은 인물로 명성황후를 묘사했다.



    이 교수는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한 작가의 상상이 참으로 잔인하다"며 "작가가 서양 궁정 소설에 등장하는 문란한 성관계를 도입해 근거 없는 성관계를 설정한 것은 무례하기 그지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작가가 고종실록을 한 번이라도 펼쳐 봤다면 이런 만화를 그려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 정도의 역사소설은 논외로 돌리고 싶지만 불행하게도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이런 종류의 독서물로부터 심대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이 담은 잡다한 스토리는 현재도 수많은 청소년용 만화의 텍스트가 되고 있으며 2001년 방영된 텔레비전 드라마 '명성황후'의 줄거리도 이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며 "국민의 바른 역사의식 확립을 위해 이 소설은 독서계로부터 폐기처분 선고를 받는 것이 옳다"고 역설했다.



    한편 한국사 시민강좌 제41호는 '역사와 소설, 드라마'를 주제로 한 특집을 마련하고 '고구려 드라마 열풍의 허와 실(여호규ㆍ한국외대)', '역사 소설에 그려진 이순신(이민웅ㆍ해군사관학교)', '소설 태백산맥 속의 대한민국(양동안ㆍ한국학중앙연구원)' 등의 글을 실었다.
  17. 쪽빠리가 쓴 조선의 근대사를
    2008/07/20 22: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쪽빠리가 쓴 조선의 근대사를 배운 분들께...
    명성황후의 업적을 많이 궁금해 하네요..모르시겠죠?
    쪽빠리가 쓴 조선의 근대사를 배웠으니까요....그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나마..조금씩 고쳐지고 고쳐지고 ..고쳐지고 있는데...뉴라이트란 쪽바리의 개들과
    면박이와 한나라당의 친일 세력들이 다시 원점으로 돌리려고 하네요.(아놔 삼천포..)

    명성황후의 업적을 궁금해 하기 전에 왜 일본이 그녀을 시해 했는지

    공부하면 그녀의 업적이 나오죠. 장황하게 제가 업적을 나열하는것 보다

    직접 공부도 하실겸 네이버와 다음 검색을 이용해 보세요. 1분도 안걸립니다.

    직접 해봐야 오래 남죠.

    이상 참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 ㅇㅇ
      2008/07/20 23: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네이버, 다음 쳐봐도 별거 안나오네요...
      아무튼 지금 우리네 교과서가 잘못 되었다는 얘기죠? 그러면 그 교과서는 일본인이 지은겁니까...위에 말한 국사학자들이 지은거 아닙니까? 소설읽고 국사학자들이 잘못알았다는건데... 과연 명성황후가 위대한 인물인지 궁금하네요... 아니면 님이 개소리를 하고 있는거든지..
    • 요즘
      2008/07/20 23:35
      댓글 주소 수정/삭제
      고종이 즉위했던 1863년부터 1873년까지 10년은 흥선 대원군이정치를 했구요.
      1873년부턴 시아버지를 몰아내는 데 성공한,
      명성황후가 정치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1873년부터 명성 황후가 고종을 통해 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정권을

      잡은 지 3년만인 1876년에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하게 되었죠.
      물론 이것은 일본의 압력으로 문이 열린 측면이 많지만.
      내부적인 '문호 개항론자' (유홍기, 박규슈, 오경석) 등의 주장이많았었기 때문에, 명성황후와 당시 집권층도
      단순히 척화만을 강조하던 대원군과는 달리, 개항에 대해 긍정적이었죠.

      그러므로 개항이 업적이라고 하긴 좀 애매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커져서..-_-;;)
      여하튼 명성 황후의 '근대적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첫번째 사건이구요.

      이후에 임오군란이 일어나는 1882년까지, 즉 개항때부터 1876에서 1882년까지는
      명성황후의 업적이 많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많은 개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거든요
      물론 고종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실 배후에서 명성황후가 모두 고민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대표적인 개화 정책은 일단 개화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만큼
      먼저, 일본에 '수신사' (김기수, 김홍집)을 보내어 개화 방향을 정하고.
      이후에 다시 일본에 '신사 유람단' (박정양, 홍영식)을 보내어 문물을 탐구하고
      청나라에도 '영선사' (김윤식, 어윤중)을 보내어, 무기와 군대를 배워오게 하죠

      이러한 탐색을 바탕으로새로운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만들었던 것도 민씨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구요
      그랬기 때문에 구식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고종을 죽이려 한게 아니라
      민씨를 죽이려 했던 거죠..겨우 살았지만서두..

      여하튼 이러한 개화 정책은 구식 군대의 반란이었던 임오 군란이 일어나면
      점차 주춤하게 되고
      급진 개화파의 반란이었던 갑신 정변이 터지면 더 느려지게 되죠 -_-

      그러다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터지면
      민씨는 이를 막으려다가 청, 일 군대를 부르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게 되는데요
      여하튼 그 통에 갑오개혁이니, 청일 전쟁도 일어나게 되죠.

      갑오개혁은 민씨가 먼저 생각했던 것이어서, '교정청'을 설치하여 개혁하려 했는데
      일본이 나중에 이에 반발하여 경복궁 앞에서 시위를 하는 통에
      교정청이 없어지고, 일본 중심의 '군국기무처'를 만들어지죠.
      여하튼 그래도 갑오개혁은 일본만의 개혁이 아니라, 민씨 생각도 있었다는 것이구요

      갑오개혁을 하는 중간에도, 차츰 일본 세력이 강해지는 가운데,
      '삼국간섭'이 일어나서 러시아의 세력이 점차 강해지자
      민씨는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 러시아와 친해지죠.
      이것 때문에 일본이 그동안 눈엣가시였던 민씨를 결정적으로 죽일 생각을 하게
      되고, 을미사변으로 이어져. 명성 황후를 살해해 버린 것입니다.

      업적만 요약한다면

      1.개항 의지가 있어서, 근대화의 계기를 만듬 (강화도 조약)
      - 이건 다소 불평등 조약이긴 하지만 -_-;;; 그래도 자율적 의지도 있었음

      2.개항 후, 개화 정책에 깊이 관여
      - 수신사, 신사 유람단, 영선사 파견 / 별기군 (신식군대) 파견

      3.자주적으로 개혁하려고 노력한 측면이 있음
      - 갑오 개혁 때 '교정청 설치'에 관여... 실패했지만 -_-

      3.일본의 압박 속에서 친러 등으로 국가의 살길을 도모한 측면이 있음
      - 을미사변으로 이어져서 죽었지만서두.-_-

      [출처] 명성황후~~~~ (거원 6-7) |작성자 뿌른오댕



      다음과 네이버에서 가장 그런대로 긍정적인 평가를 가져온 내용입니다. ㅡ.ㅡ

      이거뭐.... 완전히 뉴또라이가 뇌이버 찾아 바라고 해서 찾아 봤드만... 이거가지고 동상을 세울 업적이라.. 뉴라이트도 재수 없지만... 뉴또라이 같은 분들도 참 큰일입니다.

      개나 소나 다 국민 혈세로 동상세우자고 설치니..
    • 에드가 앨런포우
      2008/07/21 09:39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일본이 시해한 이유가 뭔지 제대로 아세요.
      청세력을 자꾸 끌어들이고 ,그래서 이권을 위해서 일보이 시해한 거죠...고종하고 명성황후 도데체 존경할 만한 업적이 있습니까?
  18. 2008/07/20 23:21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명성황후의 동상이 있다니 충격이네요.
    소설이나, 뮤지컬, TV드라마 잘 안봐서 내용은 모르겠는데, 명성황후는 동상 만들수 없는 인물입니다.
    명성황후는 불행한 주인공이긴 하지만, 대원군과 함께 존경의 대상이 되는 분은 아닙니다.
    대원군이 훨 낫죠. 대원군조차 평가받기 힘든데 명성황후라....
    여주군은 정당한 기회에 철거하세요. 여주군 망신시킨 인물이니...

    명성황후에 대한 날카로운 비난은 쓰진 못했는데, 내 블로그에 청일전쟁, 러일전쟁 이야기 쓴것 있는데 기회되면 보세요 뉴라이트 비난할려고 쓴건데 명성황후의 중요한 과오를 언급한 내용은 있어요.
    http://blog.hani.co.kr/topro1/
  19. 검색능력을 키우세요
    2008/07/20 23:5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 초등학교 6학년인 내 조카녀석도 금방 찾아 숙제 하던데..
    그리고 문장 이해력도 좀 키우세요. 하나하나 설명을 해 줘야 합니까?
    지금 중고등학생들 배우는 국사책 쓴 사람들 당시에 살았던 사람입니까? 직접 보고 겪은 것을 적었나요? 아니죠. 사료를 보고 객관적(?)으로 썼을 것 입니다. 그럼 그 사료가 무었이겠습니까? 일본학자들이 기록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일본 학자들이 누구의 편에서 기록을 하였겠습니까? 돌 쪼가리 불에 그을려서 미리 파 묻고 자기들도 구석시시대가 있었네 하고 조작하는 놈들인데...그런 썪은 사료를 광복후 혼란기에 얼마나 검증을 하였을까요. 이승만의 친일세력들이 얼마나 검증을 하였을 까요..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 관한 중요한 일부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여기까지 왔죠.

    명성황후..아직 그녀가 남긴 중요한 업적이라던가 위대한 일을 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백성을 위해 자신과 친족의 재산을 내 놓았고 대원군의 독재로 부터 고종을 독립시키는데 큰 내조를 하였죠. 외교적인 부분이 가장 큰 업적인데 우리가 배워 왔던 그런 단순한 외교가 아닌 외세로 부터 나라를 지켜 내고자 했던 외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이 대원군과 일본의 방해로 결과적으로는 실패 하였지만 그만큼 쓰러져 가는 나라를 지키려 고종을 보좌하여 활동한 것은 인정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왜 그녀가 욕을 먹어야 합니까?
    김구 선생은 명성황후의 시해 소식에 국내로 돌아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은 그 시대에 직접 살았던 인물인데 왜 그랬을까요? 단지 국모가 시해 되서? 당신들이 알고 있는 존경 받지 못한 국모였다면 김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인물들이 왜 애통해 하며 복수를 다짐 하였겠습니까?
    이야기를 하다보니 길어졌군요.
    이리 시간을 내어 글을 남긴게 헛수고가 되지 않기를 빌며..줄이겠습니다.
    • 너도
      2008/07/21 09:3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너도 참.. 어이가 없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글이나 적고 있으니..
      좀 제대로 배워라..

      명성황후 시해 소식에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쯧쯧.. 김구선생님... 뇌이버라도 검색 좀 하고...

      명성황후 민씨 친족들 대표에 지나지 않거든..
      모든 부정부패의 온상이었다는 말이다.

      명성황후가 청렴했다고 억지 주장이라도 할수 있겠지만 적어도 민씨 일족은 아니야.. 그기 보스가 누구?

      너도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글 쳐 넉고 있으니.. 쯧쯧
    • 등신아
      2008/07/21 11:2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니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봐라. 내가 모든 민씨일족이 당시 청렴하단 소리 한적도 없고 민씨 일족의 재산을 내 놓았다는 역사적인 사료를 가지고 한 말이다. 당시 이름 일일이 대 주까? 그러면 니 놈이 그 입으로 사과 할래?
  20. 제발 문장이해력을 키우세요
    2008/07/20 23:59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누가 뉴라이트라고 했나?
    뉴라이트적인 관점에서 역사를 배웠냐고 했지.
    ㅎㅎㅎ
  21. 단순하네
    2008/07/21 01:0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명성황후라고 부르면서 같이 대한제국때 추존된 왕들은 그냥 쓰고

    검색능력// 당신은 일제강점기때 살았나? 그리고 백범선생이 시해 소식을 듣고 국내에 들어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고? 백범선생이 그 당시 외국에 있었다는 말인데 어디서 구라를..복수를 칼날을 갈았는게 아니고 실제로 왜넘 한넘을 죽이고 감옥에 갔다. 사형집행전 고종이 형 집행을 연기 시켰어 살았지. 이건 기본인데 이것도 모르고 있다면 당신 역사에 대해 무지한것이다.
    • 아 진짜 무식하네
      2008/07/21 10:13
      댓글 주소 수정/삭제
      김구 선생은 1895년 남만주로 가셨고 김이언장군의 의병부대에서 활동 하셨다. 알것냐? 그리고 을미사변후 비분강개하여 1896년2월에 다시 귀국하셨고 그 와중에 치하포라는 곳에서 일본군 중위 쓰치다를 때려 죽이셨다. 정말 당신이 학생인지 어떤 신분인지 모르겠지만 학생이라면 참 역사를 찾아 배우고 이미 머리가 굳어버린 친일꼴통이라면 걍 그리 살다가 디져라. 쯔쯔
  22. 단순주의자들..
    2008/07/21 02:1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저는 여주군 주민이라 이것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말씀하시는 분들은 명성황후의 업적에 대해 얘기하고 계신데 요지는 그게 아니라 예산낭비입니다. 명성황후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필적할만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당시 여성 어땠죠 ? 대부분 일제의 침략의 순종적이었습니다. 왕비라는 위치에서 할수있었던 모든 노력을 기울인 겁니다. 한심하게도 여기서 근현대사 내용을 줄줄이 말하자면 상당히 어리석고요.. 왜 그녀가 위인으로 선정받았는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나라 국사학자들은 바보나 멍청이들이나 기회주의자들이 아닌걸 명심하고요. 덧붙여 '잘 알려지기만 하면 위인이된다'고 망언을 하신분이 계신데, 그럼 야한옷 입고 선정적인 춤추는 연예인들도 '위인'이겠군요.. 멍청아 말을 가려서해..
  23. 단순주의자들..
    2008/07/21 02:1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마리안느> 여주군 망신시킨 사람 이라고요 ? 그렇다면 왜 한해 3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 그리고 적지않은 수의 외국인들이 찾아와서 관람하겠습니까 ? 망신당한 꼴을 더 보기 위해서 찾아오는 것 같습니까 ? 우리나라엔 그렇게 대단한 국제유적지가 없는데 여주에 있다는 건 전혀 망신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국제적 망신입니다. 당신같이 말하는 건 마치 60-70년대에 있었던 친일주의자들이 말했던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해서 명성황후 폄하했던 말과 같습니다.

    덧붙여 계속 강조하고자 하건대, 글의 요지는 예산낭비입니다. 이멍청한 호구들아..
    • 단순하네
      2008/07/21 08:1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이게 무슨 수능 언어영역 문제도 아니고
      댓글에 이런저런 이야기 할 수 있지.
      자기 기득권들 지키기 위해 일본에 대항한 양반들 많았지
      명분이나 거창하지만 양반 머리 속에 상놈이니 하는..
      연예인들 폄하는 것 보니 직업에 차별의식이 있는 사람이구만
      원균이 전사했다고(전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웅이 되는 것인가?
      정신차려 이 호구아
  24. Daniel
    2008/07/21 06:5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내가 뉴또라이다 왜 어쩔래~
  25. 2008/07/21 09: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다는것도 개소리고 명성황후가 위대한 위인이라 관광지가 된것일까요? 소설 명성황후나 드라마 같은 것들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실제 업적도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쥐뿔만큼 있습니다 무슨 조약 어쩌구 하는 댓글들이 있는데 그럼 이완용도 나라의 발전을 위해 일본에 나라 팔아쳐먹었습니까? 그거야말로 뉴또라이역사관이지요
    • 콘 님아
      2008/07/21 10: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당시 상황에 명성황후가 한 역활이 무엇이였습니까? 그 녀가 여러 나라에 손을 내민건 결국은 힘 없고 쓰러진 나라 살려 보고자 노력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한 노력으로 일본 놈들에게 시해 당한것이고...당시 상황과 그녀의 위치에서 그녀는 충분히 구국의 노력을 한것으로 보이지 않나요? 그게 실패하여 후세에 업적으로 남지 못하고 일본놈 들에게 철저히 감춰진거죠. 그녀가 나라를 팔았습니까? 그녀가 백성의 피를 빨았먹었나요? 고종의 내조를 못하였습니까?
      당시 국모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믿을 인간 하나없는 고종의 훌륭한 외교관으로서 그 책임과 역활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저런 욕댓글은 남기지 못하겠죠.
    • 그래서
      2008/07/21 12:05
      댓글 주소 수정/삭제
      임오군란과 동학혁명때 백성들 다 죽이라고 청과 일본 군을 불러 들려서 개잡듯이 자기 백성을 죽였나요?

      참 어이가 없네요 ㅎㅎ


BLOG main image
새로운 블로그로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by 여의도통신

카테고리

여의도통신 (571)
편집국에서 (247)
여통 블로그판 (93)
2008 국정감사 (110)
김용민의 촌철살인 (16)
정광모의 국회디자인 (6)
서영준의 여의도만평 (16)
박상준의 여행스케치 (2)
여의도통신 photo (80)

Total : 4,144,381
Today : 5 Yesterday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