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장을 움직이는 숨은 관례 // 대정부질문 중 의사진행발언 금지
국회 본회의장은 개회 인원수부터 법안 표결방식까지 국회법에 따라 움직인다. 그러나 모든 사안을 법으로 규정할 수 없을 터. 2%의 빈자리는 법으로 정하지 않은 ‘관례’가 맡는다. 또한 상임위 회의나 본회의장에서 의원들이 '관례'를 종종 이야기 하고 한다. 국회에는 어떤 관례들이 있을까? <편집자주>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17대 국회에서 그린 그림>
임시 본회의장 의석은 선거구 순서따라 배치
본회의장에서 의원 개개인의 좌석인 ‘의석 배치’에 관례가 적용된다. 의석을 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름 아닌 선수(選數).
의장이 교섭단체별로 위치를 정하면 각 당은 선수로 의원들에게 자리를 배정한다. 위원회별로 좌석을 구분한 뒤 당 대표 등 당직자, 원내총무단, 다선의원 등의 의석은 예우차원에서 후열에 배정하고 있다. 다선 의원들이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초선 의원 등 선수가 비교적 낮은 의원들은 본회의장 앞자리에 앉게 된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초선이었던 이계진 의원(한나라당, 강원 원주)은 본회의장 '맨 앞자리에 앉는 국회의원의 비애'를 만화로 그려 선보인 적이 있다. 만화에서 이 의원은 맨 앞자리에 앉는 자신과 2, 3, 4, 5선 의원들을 비교해 자신이 겪는 불편함을 선보였다.
초선인 이 의원은 “'포말피해감(침튀김)과 무한주시 긴장감, 목디스크 불안증, 화재탈출 막막감' 등을 느낀다”며 대체로 의료보험이 안 되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토로했다. 반면 4선인 김형오 의원은 우위감, 격리감을 느끼며 5선인 이상득 의원은 성취감과 함께 전방주시 편의감, 눈치 보지 않고 자리를 옮길 수 있는 장점이 있음을 설명했다.
교섭단체별 위치 선정은 다수당 순으로 이뤄진다. 관례적으로 제1교섭단체는 본회의장 중앙에 자리를 잡는다. 제2 교섭단체는 의장석을 향해 오른쪽에 위치하며 왼쪽에는 제3 교섭단체 및 군소정당과 무소속 의원 순으로 배정된다.
등원이 미뤄지고 있는 현재는 임시 본회의장 의석표를 사용하고 있다. 총선 후 국회의장이 선출되기 전엔 국회 사무총장이 임시로 본회의장 의석을 배정한다. 임시의석 배정방법은 국회의원 선거구 순서에 따라 의장석을 향해 오른쪽 첫 번째 구역 맨 앞줄 오른쪽부터 배정한다.
비례대표의원은 지역구 의원을 모두 배정한 다음, 그 다음 의석부터 당선인이 많은 정당 순서에 따라 정당별로 의원명단 순으로 배정한다.
투표수가 명패수보다 적을 때 부족분은 기권표로
현재 본회의 투표는 전자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의원의 찬반표결 여부가 전광판에 생중계된다. 반면 임명동의안 등 무기명 투표를 진행할 경우에는 전자투표가 아닌 투표용지에 가 부를 써서 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의원들이 투표를 마치면 감표위원은 투표 용지수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명패수와 투표 용지수를 확인한다. 가끔 투표수가 명패수보다 적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의원이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는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다.
이 경우 관례에 따라 명패수보다 적은 투표수는 적은 만큼을 기권으로 친다. 지난 2005년 9월 이용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표결에서 투표수가 276매로 명패수보다 1매가 적어 기권표 처리했던 적이 있다. 여야 정치 공방으로 무기명 투표함이 개봉되지 못할 때도 있다. 이때는 투표함과 명패함을 감표위원의 확인을 받아 봉인한 뒤 관례에 따라 국회에 보관하는 방침을 따른다.
임명동의안 무검증 통과에 심상정 전 의원 문제제기
국회는 관례적으로 임명 동의안에 관련한 발언이나 찬반 토론을 본회의에서 허락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임명 동의는 운영위나 본회의에서 반대가 예상되지 않을 때 관례상 의장이나 위원회 위원장이 이의 여부를 물어 그냥 통과시키기도 한다.
심상정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2004년 12월 본회의에서 국회의 토론 없는 임명동의안 처리 관행에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심 전 의원은 본회의에 상정된 배용수 임명동의건을 두고 “토론과 검증 시스템 없이 배용수 국회도서관장을 얼마나 검증됐는지 알 수 없다”고 의문을 표시했다.
심 전 의원은 “기관장들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책임 있는 검증 과정이 제도화돼야 하는데 관행적으로 토론 없이 무기명 투표로 처리되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본회의에서 대정부질문이나 긴급 현안 질문 중에는 교섭단체 간 협의 없이는 의사진행발언, 5분 자유발언 등을 허락해주지 않는 관례가 있다. 중요한 사람의 발언 이후 누군가 그 말에 대응을 하면 발언자의 발언 가치가 희석되는 상황을 우려해서라고 한다.
정장 안입으면 “복장이 그게 뭐냐?”
국회의원들의 주 복장은 정장이다. 의원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국회에 대한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에서다. 본회의장에서 정장 착용은 의원들 사이에서 당연한 관례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몇몇 의원들의 돌출 패션(?)으로 완고했던 의복 관례도 많이 너그러워진 편이다.
가장 유명한 예는 지난 16대 국회에서 유시민 의원의 면바지 사건. 당시 4ㆍ24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유 전 의원은 2003년 4월29일 흰색 면바지에 캐주얼 자켓 차림으로 국회인사에 나와 주위 의원들을 경악케 했다.
의석에 앉아 있던 양복 입은 의원들은 “복장이 그게 뭐냐”며 반발했고 “양해 못 한다” “야유회 왔냐”고 소리쳤다. 주위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결국 의원 인사는 다음날 유 전 의원이 양복을 입고 등원한 후에야 이뤄졌다.
유 전 의원은 “오늘은 제대로 입었다”는 말로 운을 떼며 “옷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이어 유 전 의원은 동료 의원들에게 본회의 첫 날 넥타이를 풀고 오는 평상복의 날을 제안하며 “다름을 수용할 줄 아는 국회를 만들자”고 국회 인사를 대신했다.
돌출 복장은 17대에서도 이어졌다. 농민 출신으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에 당선된 강기갑 의원은 초선의원 연찬회 장소에 흰 고무신을 신고 자줏빛 생활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17대 내내 한복을 입고 다닌 덕에 수염과 도포자락은 이제 강 의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는 “답답한 양복보다 편하면서도 예를 갖추게 하는 한복이 내 체질에 맞는다”고 말했다. 원내대표가 된 지금도 강 의원의 복장은 한복이다.
여의도통신 조혜령 기자 cho@ytongsin.com
의안과 이경우 서기관에게 듣는 국회 관례 이야기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땅땅땅”
본회의에서 의안이 가결될 때 왜 의장은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릴까? 이 또한 국회의 관례라고 한다. 관례가 생긴 이유를 의안과에 문의해 봤다. 의안과 이경우 서기관은 “의사봉 3타는 국회의 오래된 관습 중 하나로 제헌 국회때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이 서기관의 설명에 따르면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는 행위는 아무런 효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국회법 어디에도 의사봉의 법적 효력에 대한 정의는 없기 때문이다. “의사봉 3타는 의사진행 단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회의를 진행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며 “의장의 선포만이 실제 법적 효력을 지닌다”고 이 서기관은 설명했다.
그렇다면 한 번도 아니고 의사봉을 왜 세 번을 두드리는 걸까? 현재까지는 ‘한국 사람의 숫자 3선호’가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숫자 3이 완성, 최고, 안정, 신성, 종합성 등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3타 이유를 “처음 한번은 야당의 의견을 두 번째는 여당의 의견을 세 번째는 의견의 합일을 뜻하기 위하여 삼타를 한다”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이 조사관은 이외에 국회의 특이한 관례로 ‘본회의장 박수 관례’를 소개했다. 원칙적으로는 본회의장에서 의장과 국회의원은 박수를 치지 않는 게 관례다. 신중한 법안심사와 통과를 위해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박수를 꼭 쳐야 하는 게 관례인 때도 있다. 이 조사관은 “다른 나라 원수나 외빈이 국회를 방문해 연설할 경우엔 박수를 치는 게 관례”라고 말했다. 지난 2004년 17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의 ‘박수 관례’를 두고 한나라당 의원과 김원기 전 국회의장 사이 실랑이가 오간 적 있다.
남경필 의원(한나라당, 경기 수원 팔달)은 지난 2004년 6월 본회의에서 “지난번 대통령의 17대 국회 개원 축하 연설에서 의장이 박수를 치는 모습을 봤다”며 “삼권분립의 상징인 국회에서 이는 관례에 어긋나는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남 의원은 또 “연설이 끝나자마자 대통령을 모시고 나가는 행동은 사무총장이 대신 했던 관례였다”며 “의장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대통령을 수행하는 것처럼 비춰져 보기 안 좋았다”면서 삼권분립의 정신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의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김 의장은 “다른 나라 원수에게 치는 박수를 자국 원수에게 했다고 국회 위상이 손상된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반박했다. 김 의장은 동행 퇴장과 관련해서 “대통령 시정연설 때는 국회가 동행을 하지 않는 게 관례였지만 개원연설이 끝나고 원내대표 간담회가 이어져 같이 퇴장을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여의도통신 조혜령 기자 cho@ytongsin.com
<여의도통신 주간지 69호(2008년 7월 7일자)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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