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찾은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지구촌동포연대(KIN) 사무실 문 안쪽에는 커다란 지도 하나가 붙어 있었다. 제5회 재외동포 NGO 대회를 사할린에서 연다는 ‘안내장’이었다.
지구촌동포연대는 ‘망향의 그늘 사할린에서 역사회복의 희망을 찾다’라는 주제로 7월29일부터 8월3일까지 사할린 지역에서 열 예정이다. 일제 식민시기 강제동원된 채 여전히 사할린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 역사를 돌이켜 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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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지구촌동포연대 사무실 책장에 사할린 이중징용 피해 진상조사 책자가 꽂혀있다.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 대표는 “올해 계획된 사업은 재외동포NGO대회”라며 “다른 계획은 없고 올해엔 사할린문제에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원경 인턴 활동가도 “사할린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며 “작은 힘이라도 보탬이 돼 사할린 동포들의 문제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 2009년까지 영주귀국 완료
이들이 사할린으로 직접 날아가서 동포들의 생활을 짚어 보는 것은 외교통상부의 ‘사할린 동포 영주귀국 사업’과 맞물려 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610여명 사할린 동포 1세대를 한국으로 영주귀국 시키는 사업을 진행했다. 외통부는 “사할린 동포 1세대들의 귀국 염원을 실현시키기 위해 일본 및 러시아 정부와 협의를 거쳐 진행했다”며 2007년 9월까지 “약 1600명 사할린 동포가 국내로 영주귀국 했다”고 밝혔다.
영주 귀국한 사할린 동포 1세대들에게는 한국 정부가 지원하는 국민임대 아파트 입주 및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생계지원 및 의료지원을 받게 된다. 일본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항공비와 생활용품을 지원한다. 정부는 사할린 동포 1세대 영주귀국 확대사업은 2009년 완료를 목표로 계속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구촌동포연대는 정부의 사할린동포 귀국 사업에 몇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 번째는 관점 문제다. 지구촌동포연대는 사할린 문제가 한국 정부가 일본에 전범국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안으로 보고있다.
하지만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모든 청구권 논의는 끝났다’는 일본 정부 논리에 맞춰 끌려다닐 뿐이라는 것이다. 사할린 한인동포 문제에 대해 일본은 도의적 책임만 있고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주장을 편다.
배덕호 대표는 “정부가 역사적 관점 없이 진행하다 보니까 중요한 문제인데도 놓치고 말았다”며 “사업주체도 민간단체인 일본과 한국의 적십자사가 됐다”고 민간 주도의 사업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1세대만 돌아오면 가족 생이별
또 다른 문제는 영주귀국 하는 대상 문제다. 외교부는 1945년 8월15일 이전 사할린에서 출생한 사람을 한인 1세대로 규정하고 이들만 영주귀국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이다. 배 대표는 “1945년 이후 출생은 귀국 대상이 못 되고 귀국하는 1세대는 자신의 가족과 생이별 해야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인 1세대가 귀국해 정착한 후 살아갈 일도 막막하다. 최소 64세내지 65세에 이르는 1세대의 연령대는 부양가족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적절히 뒷받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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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사회단체 탐방 - 다음달 29일부터 사할린 지역에서 열리는 제5회 재외동포NGO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는 지구촌동포연대 활동가들이 사할린 지역 지도를 펼쳐놓고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덕호 대표, 최준혁 사무국장, 이은영 간사, 김원경 인턴.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
또 다른 문제는 귀국지원 사업이 ‘귀국’에만 초점을 맞춘 근본적 한계라는 점이다. 여의치 않은 사정 때문에 귀국 신청을 하지 못해 사할린에 남게 되는 한인 1세대에 대한 지원책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일본의 경우는 어땠을까. 배 대표는 “1991년 우리보다 먼저 중국에 있던 군인을 귀국시킨 일본은 철저했다”며 “직계비속 한 가족에게 영주귀국을 허락했고 이들에게 직업교육, 문화교육 등 정착을 위해 전반을 지원했는데 한국과는 영 딴판”이라며 불만을 제기했다.
배 대표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7대에 발의된 한명숙 전 의원안은 직계비속 한 가구에 대해 영주귀권을 허락해 동포 1세대와 함께 귀국하는 것으로 돼 있다.
배 대표는 “사할린 영주귀국 사업은 한일 적십자사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 전 의원처럼 법안발의를 통해 사할린 영주귀국 사업을 지원할 수 있다”고 법 제도적 정비를 촉구했다.
“사할린 문제와 관련해 법안을 낼 의원이라면 직접 사할린 현장에도 직접 가봐야 한다. 국회의원 임기 중에 사할린 문제만은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디 그런 의원님 안계시나?”
배 국장은 먼저 사할린 문제에 관심 있는 의원들의 ‘사할린동포를 생각하는 모임(가칭)’ 등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의도통신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활동가 이모저모 “MB정부 등장 후 과거사단체 좌절”
김원경 인턴
“모르고 산 것이 부끄러워”
“인터넷에서 우토로에 대해 처음 알았어요.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어요. KIN(지구촌동포연대)에서 하는 길거리 모금운동을 돕기로 한 거죠. 그것이 우토로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친구들은 신기해하기만 하고 거기서 끝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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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리에 모인 지구촌동포연대 활동가들. 왼쪽부터 배덕호 대표, 김원경 인턴, 최준혁 사무국장, 이은영 간사. 한승호 기자 hanphoto77@ytongsin.com | ||
2005년 지구촌동포연대와 인연을 맺게 된 김원경(24세) 씨는 2007년 일주일에 한 번, 올해부터는 매일 출퇴근 하며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자연히 학업은 중단.
“대학 3년 마치고 휴학했어요. 행정학과라 친구들은 취업준비, 영어공부에 열심이겠지요. 일 년을 휴학했지만 아깝지는 않아요. 제 정체성을 찾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돈도 중요하지만 다른 가치도 중요하니까요. 또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어요.”
“꼭 휴학까지 해야 하냐”는 부모님 반대에 김 씨는 “믿어 달라”는 한마디로 ‘반동의’를 얻어냈다. 김씨는 “뭘 믿어달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열심히 하고 있다”며 “제 열정이 사할린동포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이은영 간사
“MB정부 등장 후 과거사단체 좌절”
이은영(32세) 간사가 지구촌동포연대(KIN)을 알게 된 것은 한국보다는 일본인 친구를 통해서였다. 재일조선인 문학에 대한 석사 논문을 준비하던 이 간사가 일본으로 유학 갔을 때 만난 재일조선인 친구들을 통해서였다.
활동하면서 해외출장을 가는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 일반 회사라면 해외출장 비용은 당연히 회사에서 지원할 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회사’가 비영리단체인 경우 ‘비용’에 대한 부담은 누가지게 되는가 하는 궁금증이 슬며시 들기도 한다.
“부모님도 제일 많이 물으세요. 일본 우토로에 자원봉사 가고, 사할린에도 다녀오고 그러니까, 걱정이 되셨나 봐요. 비용은 물론 단체에서 대죠.”
2년6개월 차 활동가인 이 간사는 정치권에 대한 당부로 말을 맺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과거사 관련 단체는 좌절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동포문제를 두고 보면 정부가 일본이나 러시아에 과거사 청산 관련해서는 말도 못 꺼내고 있어요.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그런 쪽에도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최준혁 사무국장
“사회적 관심사를 일터에서 함께하길”
최준혁 사무국장(39세)은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 치고’ 활동가로 ‘전업’했다. 활동 두 달 차. 회사를 다니면서 재일동포 민족학교에 책 보내는 인터넷 카페 ‘뜨겁습니다’ 활동을 하면서 단체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계기가 됐다.
“‘뜨겁습니다’라고 해서 이상한 단체라고 오해하진 마세요. 동포를 만나는 그 첫 가슴 뭉클함을 표현한 단어니까요(웃음). 그 활동을 통해 배덕호 대표에게 제안을 받았어요.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쉬운 일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상당히 어렵네요.”
회사에서 마케팅, 기획, 영업 등 다양한 일을 했던 최 사무국장은 “사람살이가 다 같은 생리겠지만 회사에서 하는 일과는 너무 다르더라”며 “만나야할 사람도 많고, 사건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더라”고 털어놨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아직 전업 사실을 모른다”는 최 사무국장은 “어떤 일을 하든 평소 사회에 대한 고민을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부터 풀어보려고 노력하라”며 “꼭 활동가로 전업하지 않아도 동호회나 회사 내 모임 등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배덕호 대표
“역사와 인권 관점서 재외동포 접근”
동포연대를 이끌고 있는 배덕호 대표(39세)는 재외동포문제라는 낯선 영역에 발을 내밀었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학창시절. 배 대표 옆 방 친구 덕에 재외동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친구는 한국으로 친 부모를 찾아온 해외 입양아.
그들과 교류가 생기다보니 해외 입양간 친구들과도 자연히 교류가 많아졌다. 1995년에는 재미동포 1.5세대 1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의 환경과 노동, 위안부 할머니를 만나고 농촌에서 농사짓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배 대표가 한국 코디네이터를 맡았다.
“감동이었어요. 재외동포들이 사서 고생이라는 것 알면서도 고국을 배우러 오는 것이니까요. 좋은 프로그램이구나. 다른 지역 동포도 이렇게 한국으로 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입국 비자 받는 것 자체가 힘들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의 불우한 산물. 일본과 중앙아시아, 사할린 등 각지에 흩어진 ‘비자발적’ 재외동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려는 없었다. 배 대표는 “한국사회 시민운동이 왜 재외동포에겐 관심이 없었는지 의문이었다”며 “역사와 인권 관점에서 재외동포 문제를 재해석해 보자는 측면에서 접근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체 활동도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단체를 꾸리고 이제는 일 년에 몇 차례씩 현지에서 재외동포를 만난다. 하지만 배 대표에게도 한 가지 숨기고 싶은 점이 있다는 것. 바로 언어다.
“영어나 러시아어, 하나도 못합니다. 소통이야 다른 언어 잘 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저는 그분들 통해서 이야기 하죠. 배워야지, 꼭 배워야지 하는데 시간이 잘 안되네요. (웃음) 언젠간 배울 겁니다.”
멋쩍어 하는 배 대표의 미소. “언젠간 꼭 배울 것”이라는 강한 어조 속에서 배 대표의 의지를 엿보게 된다.
여의도통신 김유리 기자 grass100@ytongs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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